2013. 2. 4.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와티비WATV★ 어머니하나님★[안증회]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와티비WATV

 어머니하나님[안증회]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

창세기에 나오는 수수께끼 같은 말 :우리
-리더스다이제스트<성서속에 불가사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2]

창세기 1장의 절정과 그 신비의 핵심은 히브리어로 
인간 혹은 인류를 뜻하는'아담'의 창조에 관한 묘사에 있다.
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3]

앞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있으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4]

그 대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로 말한다.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5]

하나님의 다른 모든 창조행위는 한가지 행동으로 이루어졌다 
말을 하면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6]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닮은 
다른 존재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7] .

이 대목은 오랫동안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가 되어왔다.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8]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9]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성경학자들에게
'우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0]

우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엘로힘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1]

엘, 엘로아흐,  단수명사[하나님이라는 뜻]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2]

엘로힘 복수명사 하나님들이라는 뜻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3]

"주꼐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요한계시록 4장 11절]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4]

성경에 기록된 영의 이치는 어떠할까요?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5]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6]

우리
하나님들의 형상을 따라
남자(하나님)와 여자(하나님)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7]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하나님의교회 watv와티비 18]

"오직 위에 있은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하나님)라"
(갈라디아서 4장 26절)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안증회,안상홍증인회] 정통성을 알리다.↘ ↙PASTEVE↘↙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안증회,안상홍증인회] 

정통성을 알리다.↘ ↙PASTVE↘↙




기독교의 시작점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부터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는 신흥종교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다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다



마가복음 1장
1절---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9절---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절---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나님의교회 안증회가 받는 침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이날이 바로 우리들이 최후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유월절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지킨 새언약 유월절]

누가복음 22장
7절---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19절---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절---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기독교 핍박]



유대인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기독교의 수장되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무리들은 당연히 흩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다
결국 120명의 사도들은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초대교회 유일한 진리가 있는 하나님의교회]


본격적인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House-church(가정예배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200년이 넘어서다

예배의 장소 - 개인의 집, 셋집, 회당이었고 200년 이후로는 교회, 주의 집, 하나님의 집, 기도의 집이라고 불러서 특별한 건물에서 예배를 거행하였다.[교회사 103, 이건사 발행 송낙원 목사 지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다.






로마는 이스라엘을 복속시키고 태양신을 섬기는 다신교 국가로, 황제는 절대권력이었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신앙면에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않았다.
그러니 당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을 위해 여러 신들,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다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House-church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로마의 탄압을 피해 가정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다.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
---폭군으로 유명한 그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지하무덤)에까지 숨어 들어갔다
거기서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예배드렸던 장소, 카타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311년  갈레리우스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그는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그는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347년 기독교는테오도시우스 1
---비로소  이떄 기독교는 국교로 인정받았다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이다.



이 무렵 하나님의교회 즉 기독교는 서서히 파벌이 생겼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VS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됐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다
두 지역 교회의 교리 논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VS
동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


결국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성력 114일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실행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모든 기독교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도록 강요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빅터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14일을 유월절 지켰다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다
두 교리 간의 역법(曆法) 차이로 발생했다
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이교도화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이 기간에 급격하게 로마교회의 교리는 변질됐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86년 십자가상을 도입했다.





교리의 변화와 논쟁이 거세질 즈음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4세기 말 훈족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족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 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잡았다.
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했다
하지만 로마교회에 정면으로 반대하던 나라 중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
로마감독의 농간에 차례차례 멸망당하고 말았다.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1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천주교황의 탄생이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
그럼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다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 성으로 유배시킨 때까지다.
이제 참다운 기독교인 하나님의교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사라졌다
그 후 교회는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
이것은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내건 것은?
금전이나 재물을 받은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이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다.


이처럼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다
신학 교수를 거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티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티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이렇게 반박문을 말했다.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긴 서한을 내걸었다
비로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함께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하신 교회?
바로 하나님의교회
사도들도 다녔으며 그의 제자들도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믿음을 지키는 그 교회.
바로 그 하나님의교회1964안상홍님에 의해 복권됐다.

히브리서 9장 
27절---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인류가 바라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000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교회가 수복된 것이다
2000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며 사라지고 있다
종교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를 만나고 싶다면?
그럼 처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종교인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정통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의교회.